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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점장대(吳王點將臺)

2011-11-01    admin    Browsed:1028

무상강(巫相崗) 서쪽에는 토대 우뚝 솟아 있는데 위세가 당당하게 덤비고 지(志)에는 기돈(旗墩)이라고 합니다. 높은 토대는 남쪽이 돌장과 가깝고 몇 백 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는 원(元) 말 농민 기의의 수령인 오왕 장사성(張士誠)이 열병하고 연무했던 곳이라고 전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연무장(演武場)이라고 합니다. 거기는 바로 오왕점장대(吳王點將臺)입니다.
1984년 문물 조사를 할 때 점장대는 자연스럽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발견했습니다. 2000년, 과학 발굴을 벌였는데 그 안에 석실이 있고 통로, 복도, 석실 3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길이 26미터이고 높이 8미터입니다. 측정한 결과에 의하면 석실은 기원전 805년-기원전 551년 서주(西周)만기(晩期)에서부터 춘추초기까지 그 사이에 만들어졌습니다. 대량의 품질이 높은 원시 청자(靑瓷)가 발굴되었으니 중국의 원시 청자를 구어 만드는 기술이 동한(東漢) 때 성숙해진 이론을 깨졌습니다.
근 20년 이래는 학술계는 석실과 토대의 용건은 원래 주택설, 고분설, 군사설, 제사 시설설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오왕점장대는 이 과제의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그의 규모가 큰 것과 출토한 청자는 거의 다 주기이고 같이 매장한 것이 없는 것으로 분석하면 제사대나 제사실로 인정할 수 있나 봅니다. 이렇게 큰 제사 시설은 나라든 왕실이 사용할 수 있고 세상에서 오왕점장대라고 하니까 꼭 역사가 담겨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오왕은 서주춘추 시기의 오왕이며 원말의 오왕 장사성이 아닙니다.
점장대는 우산의 가장 서쪽에 있고 거기서 올라가면 남쪽으로 곤승호(昆承湖)를 조망할 수 있고 서쪽으로는 무석과 강음의 각 산을 볼 수 있습니다. 멀리 북쪽으로 조망하면 하늘가에는 은근히 끈이 있는 모양인데 거기 바로 장가입니다. 여기서 조망하니 기상이 넓어서 마음에 기세를 키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