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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정(辛峰亭)

2011-11-01    admin    Browsed:1115

춘추 전국 시기에 오국의 왕 합려(闔閭)의 군대가 국경까지 쳐들어왔는데 제국의 제경공(齊景公)이 어쩔 수 없이 협박으로 막내 딸 맹강(孟姜)을 인질로 오국으로 보냈습니다. 맹강이 나라와 자기 고향을 우려하는 데다가 남편이 일찍 죽어서 결국 우울해서 병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죽기 전에 그는 고향을 볼 수 있도록 자기 시신을 우산에서 묻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맹강이 죽은 후에 오왕은 그의 의지를 따라 그의 시신을 우산 신봉에서 묻었습니다. 신봉은 명나라 때부터 이름을 얻었는데 그 중의 신(辛)이란 글자는 비통하다는 뜻을 담아 있는 걸 보니 혹시 이 여자의 슬픈 이야기에서 나왔나 보죠.
“齊女墓荒枯樹老”라는 시는 명나라 시인의 묘사이었는데 이제 제녀묘가 시간과 같이 살아져 확실한 위치는 모르겠습니다. 남송 때 신봉 위에 정자가 지었는데 처음에는”망호정(望湖亭)”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수번의 수선을 걸쳤는데 이름은 몇 번 바꿨습니다.“극목(極目)”,“달관(達觀)”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마지막으로 “신봉”이란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상숙은 호수가 많은 수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미신했는데 교룡이 나와서 마을에 해칠 까봐 교륭의 행동을 단축하자고 수도 옆에 쌀보리를 심었습니다. 쌀보리의 잎이 검과 같아서 교룡이 경솔히 건드리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신봉정을 지은 것도 교룡을 위협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정 안에는 비석이 있는데 전문적으로 교룡을 죽이는 서진군(徐眞君)의 화상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 석비들은 이제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신봉정은 육각 겹처마 지붕이고 2층인데 가볍고 깨끗한 데다가 우아하고 단정해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오지역의 아름다움과 딱 맞을 뿐 아니라 상숙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서로 호흡이 이어져 있어서 친근감이 있고 우산의 표지적인 건축이 되었습니다.
정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상숙 고도와 신도시가 모두 다 한눈에 보입니다. 여기서 남쪽으로 조망하면 두 개의 호수가 있습니다. 곤승호(昆承湖)가 좀 가물가물한 듯해서 송나라 서차탁(徐次鐸)이 지은 <극목정(極目亭)>과 어울립니다. “幾點歸帆破暮煙,數行雁字落霞邊。”상호는 성과 산의 가까이에 있는데 만경창파이고 물결이 출렁거려서 황공망(黃公望)의 그림과 또 같습니다.
우산을 올려다보면 성벽 밖에 푸른 나무로 덮인 산에 새들이 숲으로 날라가는데 자연계의 소리는 다 들립니다. 명나라 시인 왕공(王珙)의 명구”耳清塵不到,何必問桃源”이 여기서 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