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尙湖), 서호(西湖), 산전호(山前湖)라고도 합니다. 상호란 아름다운 이름은 어떻게 지었습니까?
이 이름은 주왕조(周王朝)의 재상 강상(姜尙)이 호숫가에 은거하기에 이름을 얻었습니다.
상조 말, 주왕(紂王)이 덕을 잃고 황음무도(荒淫無度)해서 황후를 폐위시켜 달기를 지명했습니다. 그리고 충신을 구속하고 소인을 임용하여 태자를 폄적했습니다. 궁녀에게 채분(虿盆)의 형을 처하고 간신에게 포락지형(炮烙之刑)을 처했습니다. 그래서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이 입을 닫히고 인심을 얻지 못하고 고립에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조가(朝歌)에 있는 백성들이 어지럽게 도망쳤습니다.
그 중에는 한 서민이 있었는데 이름은 강망(姜望)이라고 하여 자 자아(子牙), 여상(呂尙)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강태공(姜太公)이나 태공망(太公望)이라고 존경하게 불렀습니다. 그분은 70살 넘었는데 천문지리에 통할하고 뛰어난 군사 재능이 있지만 영주를 만나지 못한 탓에 백정과 상인 사이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주왕이 폭정을 행하는 짓을 보고 몰래 조가와 멀리 있는 동해 바닷가에 가서 해우산(海隅山),(오늘 날의 우산虞山)에 은거했습니다. 여유가 있을 땐 해우산 아래 있는 호수에 낚시를 하곤 했습니다. 강태공이 낚시하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낚시하면 모두 다 바늘 위에 미끼를 달고 합니다. 그런데 강태공은 가는 대나무 위에 작은 갈대를 걸쳐서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항상 큰 것을 낚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지역의 어부, 농민들이 늘 그가 낚시하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그는 너무 즐거웠는데 항상 이런 백성들과 얘기를 하고 농식물을 종식하는 기술을 알려 주고 나라를 잘 다스려 안정시키는 이치와 군대를 인솔하는 방법, 그리고 됨됨이를 얘기해 주곤 했습니다. 그는 늘 점치고 성상을 관찰하며 사람에게 관상을 봐 주고 병을 고치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은 너무나 신통했습니다. 그리곤 그는 전혀 돈이나 물건을 받지 않고 낚시해서 얻은 물고기까지 백성들에게 나누어 줬습니다. 얼마 안 되어 그 지역의 모든 백성들이 예의 바르게 가르쳐 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산 신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일은 무석(無錫) 매촌(梅村)에 있는 중옹(仲雍)에게 알려 줬습니다. 태백(泰伯), 중옹(仲雍)이 원래 우리 나라 서쪽 주족(周族)의 수령인 고공(古公) 단부(檀父)의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따르고자 왕위를 동생 계력(季歷)에게 왕위를 전해 주기 위해 오국(吳國)으로 왔습니다. 태백은 무석에 살고 중옹은 해우산에 살았습니다. 그 후, 태백은 오국의 수령이 되었습니다. 태백이 죽은 후, 고희를 맞이하는 중옹이 무석에 가서 수령의 자리를 이어받으러 갔습니다.
그는 태공망이란 특이한 사람의 소식을 듣고 연로한 몸을 고려하지 않고 아들과 수종 몇 10명을 데리고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해우산 아래의 서호 호숫가에 도착하는 대로, 역시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걸쳐 흰 머리에 아이 같이 뛰어난 얼굴인 노인을 보았습니다.
중옹이 바로 앞으로 가서 절을하여:”낚시하시는 분 태공이라고 합니까?“
강태공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을 보고 옷차림으로 누군지를 대개 맞췄습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이렇게 물었습니다.”맞는데 대인께서 누구십니까?”
“전 기주(岐洲)인사인데 고공(古公) 단부(檀父)의 아들 중옹입니다.”
강태공은 다시 절을 하고:”오래 전부터 명성을 들었습니다. 태백과 중옹이 왕위를 사양하는 것을 멀리까지 명성을 떨쳐 왔습니다. 전 조가성 안에 있는 백성인데 주왕이 폭정을 행하기에 여기까지 도망쳤습니다. 여기 동해 바닷가에서 대인을 뵐 수 있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말 제 행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한 후 태공이 어부들에게 인사를 하고 중옹을 데리고 살고 있는 석실 안으로 갔습니다. 소동이 앉은 두 사람에게 차를 준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얘기할 때, 강태공이 “첫째 경천(一敬天), 둘째 애민(二愛民), 셋째 친현(三親賢)하는 것이요. 왕자의 나라는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여 패자의 나라는 국토를 비옥하게 만듭니다.”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을 얘기할 때, 강태공이 “군령은 무거운 산과 같고 자기의 인민을 자식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말할수록 마음이 통했습니다. 중옹은 강태공이 기둥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믿고:“이제 주왕이 도덕을 잃어서 백성들은 모두 다 도탄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태공이:“저는 서백후(西伯侯) 희창(姬昌)이 널리 어진 정치를 펼치고 인정 많게 고려합니다. 농사 지는 사람에게 밭을 줍니다. 땅바닥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고 감옥으로 삼으며 각목위리(刻木爲吏)를 하여 형법을 행하지 않으면 좋겠소. 백성들이 남녀가 결혼을 할 만하면 나라가 돈을 내고 결혼하게 해주고 남편이 있는데 자식이 없는 이, 어린데 아버지를 잃은 이들에게는 돈을 줍니다. 기주에는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해서 춤과 노래로 태평성세를 찬미합니다.”
중옹이:”주왕이 종일 포악을 해서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희창은 서민들을 구하려고 하는데 도울 사람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나라와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을 잘 익히니까 왜 안 가서 도와 줄까요?”
태공이:” 맞습니다. 성상을 보니 희창이야말로 왕이 되실 겁니다. 저는 서기(西岐)로 갈 겁니다.”
중옹이 태공과 이야기가 통하고 해서 알게 모르게 해가 질 때가 되어 둘이 절을 하여 작별을 했습니다.
한 달이 안 되어 강태공이 해우의 백성들을 떠나고 고된 여정을 겪어 서기까지 갔습니다. 그는 웨이허 호숫가에 서백후와 만났는데 원로 중신이 되었습니다. 강태공은 주왕조의 건국 공신으로 서백후를 보좌하여 주왕을 공벌해서 천하를 평정했습니다.